주말마다 고속도로는 막히고, 백화점은 인산인해를 이루며, 공항에는 해외여행을 떠나는 인파로 가득합니다. 이러한 광경을 보면 문득 드는 생각이 있습니다. “정말 한국 경제가 안 좋은 게 맞을까?” 뉴스나 각종 매체에서는 경기 침체, 수출 부진, 자영업 붕괴, 실업률 증가 등을 보도하지만, 우리가 직접 목격하는 장면들은 정반대의 모습입니다. 경제는 나쁘다는데 사람들은 소비를 멈추지 않고, 사회는 활기를 유지하는 듯 보입니다. 이런 괴리감은 어디서 비롯된 것일까요? 이번 글에서는 체감과 통계 사이의 간극, 인지적 착시와 심리적 요인, 공간적 편향을 중심으로 한국 경제의 진짜 모습을 살펴보겠습니다.
체감과 통계 사이의 간극: 공간적 노출 편향
2025년 1분기 한국은행과 통계청 발표에 따르면, 실질 GDP 성장률은 전년 대비 1.2%로 낮은 수준이며, 소비자물가지수(CPI)는 꾸준히 오르고 있습니다. 실업률, 특히 청년층 실업률은 고공행진을 이어가고 있고, 자영업 폐업률도 높은 수준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백화점과 여행지, 공항은 사람들로 북적입니다. 이러한 현상은 단순히 경제가 살아났다고 볼 수 있는 걸까요? 여기서 중요한 개념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공간적 노출 편향(spatial exposure bias)’입니다. 이는 특정 장소에서의 경험을 전체로 일반화하는 인지적 오류를 말합니다. 예를 들어, 고속도로에서 차량이 몰리는 것을 보고 “요즘 다들 잘 사네, 차도 많고 다 놀러 다니고 있잖아”라고 느끼는 것이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하지만 고속도로, 공항, 백화점, 유명 맛집 등은 본질적으로 돈을 쓸 여력이 있는 사람들만 진입 가능한 공간입니다. 다시 말해, 이미 경제적 여유가 있는 계층만이 그 공간에 존재하며, 우리는 그 일부를 보고 전체 경제가 괜찮다고 착각하게 되는 것입니다. 반대로, 경제적 어려움을 겪는 계층은 이런 장소에 나타나지 않습니다. 그들은 주말에도 집에 머무르거나, 아르바이트 및 노동 현장에서 시간을 보냅니다. 당연히 대중의 시야에서 사라지고, 존재감이 미미해지며, 경제 위기의 체감도는 감소하게 됩니다. 만약 무료 급식소나 인력시장에 가보면, 또 다른 경제 현실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즉, 우리가 경제를 체감하는 공간은 왜곡된 현실을 보여줄 수 있으며, 이를 인식하지 못하면 ‘경제가 잘 돌아가는 듯한 착시’에 빠지기 쉽습니다.
보이지 않는 사람들, 보이지 않는 소비: 온라인 활동과 외부 노출의 차이
경제 상황을 판단하는 데 있어 우리가 주로 보는 것은 '눈에 띄는 활동'입니다. 하지만 오프라인 활동은 그 자체로 선택된 소수의 활동일 수밖에 없습니다. 상대적으로 경제적 여유가 있는 사람일수록 외식, 여행, 쇼핑 등의 활동에 적극적이고, 이러한 활동은 백화점이나 공항 같은 눈에 잘 띄는 공간에서 이뤄집니다. 반면 경제적 여유가 부족한 계층은 집에서 머무는 시간이 많고, 온라인에서의 활동 비중이 높습니다. 이러한 차이는 경제 인식의 왜곡을 낳습니다. 오프라인 활동은 물리적 공간에서 직접 노출되기 때문에 시각적으로 강한 인상을 줍니다. 반면 온라인 소비는 보이지 않으며, 그 규모나 빈도 역시 명확히 체감되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누군가는 외식 대신 배달음식이나 간편식을 먹고, 명품 쇼핑 대신 중고 거래 앱이나 온라인 할인몰을 이용합니다. 이는 분명한 소비 활동이지만 눈에 잘 띄지 않기 때문에 사회 전반의 경기 흐름을 판단하는 데 있어 누락되기 쉽습니다. 또한 온라인 활동 비중이 높은 사람들은 그만큼 외부 활동에서 빠지기 때문에, 공간적으로도 보이지 않게 됩니다. 즉, 백화점과 공항에서 보이는 사람들은 항상 ‘보일 수밖에 없는’ 사람들입니다. 그 결과 우리는 경제 상황을 판단할 때, 시각적으로 드러나는 소비만을 근거로 전체 경제를 해석하는 오류를 범하게 되는 것입니다. 실제로 소비 여력이 있는 사람들이 외부에서 소비 활동을 할 확률이 높기 때문에, '활발한 경제'라는 착시가 생깁니다.
비교 소비와 보상 소비: 착시를 유발하는 사회심리
경제가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소비가 지속되는 또 다른 이유는 인간의 심리적 요인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바로 ‘비교 소비(comparative consumption)’와 ‘보상 소비(compensatory spending)’입니다. 이 두 가지는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 경제 인식 착시를 불러오는 주요 원인 중 하나입니다. 먼저 비교 소비는 주변 사람들과의 비교를 통해 자신의 소비 수준을 맞추려는 심리입니다. 친구가 해외여행을 다녀오고, 동료가 명품을 사며, 이웃이 고급차를 타는 모습을 SNS나 주변에서 접하게 되면, 설령 자신의 경제적 여유가 충분치 않아도 '나도 그 정도는 해야 하지 않나'라는 압박을 느끼게 됩니다. 이로 인해 사람들은 무리를 해서라도 소비를 하게 되고, 이는 외형적으로는 경제가 활발해 보이게 만드는 요인이 됩니다. 보상 소비는 경제적 어려움이나 스트레스를 해소하기 위한 심리적 지출입니다. 예를 들어, 경기 침체로 인해 주택 구매의 꿈을 포기한 청년층이 차를 사거나 명품을 구매하며 현재의 삶에 만족을 찾으려는 경향이 증가하고 있습니다. 이런 소비는 실질적인 여유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심리적인 결핍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당장의 스트레스를 줄이기 위한 선택이기도 하며, 장기적인 재정 건전성과는 오히려 반비례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문제는 이러한 소비가 '경제가 좋다'는 착시를 만들어낸다는 것입니다. 눈에 띄는 소비가 곧 전체 국민의 소비 여력을 나타내는 것은 아님에도 불구하고, 비교와 보상 소비는 사회 전반의 소비 규모를 부풀려 보이게 만듭니다. 결국 사람들은 주변에서 보이는 소비 풍경만을 보고 경제가 괜찮은 줄로 오해하게 됩니다. 이는 SNS와 미디어가 소비를 과시하고 확산시키는 현대사회에서는 더욱 뚜렷하게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종합적으로 살펴보면, 한국 경제는 분명히 구조적 어려움을 겪고 있으며, 각종 경제 지표가 이를 뒷받침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일상에서 접하는 소비의 풍경은 이와 상반된 인상을 주고 있으며, 이는 '공간적 편향', '인지적 착시', '비교/보상 소비'라는 복합적 요인들로 설명됩니다. 이로 인해 “정말 경제가 나쁜 게 맞을까?”라는 의문이 자연스럽게 생기며, 이러한 의문은 진짜 경제를 가리는 일종의 착시 효과로 작용하고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경제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단순히 눈에 보이는 활동만을 기준으로 삼아서는 안 됩니다. 오히려 보이지 않는 계층, 통계에 반영되지 않는 심리, 드러나지 않는 소비까지 폭넓게 바라볼 수 있어야 하며, 그래야만 경제의 실상을 보다 정확히 파악할 수 있습니다. 지금은 소비 여력이 없어도 무리해서 소비를 이어가는 시기이며, 이는 결국 지속 가능하지 않습니다. 언젠가는 이 착시도 끝나게 될 것입니다. 그 전에 우리는 지금 경제가 어떤 상황인지, 그 본질을 꿰뚫어 보는 통찰이 필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