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5월, 국내 극장 산업에 사상 최대 규모의 빅딜이 성사됐습니다. 롯데시네마와 메가박스가 전격 합병을 발표하며, 한국 영화 산업의 구조에 큰 변화가 시작됐습니다. 각각 국내 극장 점유율 2위와 3위를 차지하고 있던 두 기업이 손을 맞잡음으로써 기존 1위였던 CJ CGV를 넘어서는 새로운 거대 사업자가 탄생하게 된 것입니다. 하지만 이 합병은 단순한 순위 경쟁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극장 산업 전반이 침체기를 겪고, OTT(온라인 동영상 서비스)의 대중화로 인해 콘텐츠 소비 패턴이 급변하는 상황에서, 이번 합병은 극장 산업이 직면한 구조적 위기를 타개하기 위한 일종의 '생존 전략'으로 읽히고 있습니다. 이 글에서는 합병의 배경과 의미, 소비자와 업계에 미칠 영향, 그리고 향후 전망까지 심층적으로 분석해보겠습니다.
극장 산업의 위기와 합병의 불가피성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한국의 극장 산업은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시장이었습니다. 2019년 기준 연간 관객 수는 2억 명을 돌파하며, 국민 1인당 연간 극장 방문 횟수도 세계 최고 수준이었습니다. 하지만 2020년부터 시작된 코로나 팬데믹은 극장 산업에 치명적인 타격을 입혔습니다. 사회적 거리두기, 방역 지침, 외출 기피 등의 이유로 관객 수는 급격히 줄었고, 2024년 기준으로 연간 관객 수는 약 1억 2천만 명 수준에 머무르고 있습니다. 이는 5년 사이에 관객 수가 절반 가까이 줄어든 것으로, 극장 산업 전반의 수익성에도 직격탄이 됐습니다.
극장 매출 역시 급감했습니다. 2019년 기준 약 2조 원에 달했던 전체 매출은 2024년 기준 1조 2천억 원 수준으로 떨어졌으며, 이는 관객 수 감소뿐 아니라 객단가의 상승에도 불구하고 실질 수익이 줄어들었음을 의미합니다. 롯데시네마는 2024년 가까스로 흑자 전환에 성공했지만, 메가박스는 100억 원이 넘는 적자를 기록했습니다. 이처럼 지속적인 적자 구조 속에서 두 기업은 더 이상 경쟁을 지속하기보다는 협력을 통해 생존을 도모하는 방향으로 전략을 전환한 것입니다.
OTT의 성장도 이번 합병의 주요 배경입니다. 넷플릭스, 티빙, 웨이브, 디즈니플러스 등 다양한 온라인 플랫폼이 고품질 콘텐츠를 빠르게 공급하면서, 많은 관객들이 극장을 찾기보다 집에서 편하게 영화를 감상하는 쪽을 선호하게 됐습니다. 4K 이상의 고화질, 서라운드 사운드, 다양한 자막과 음성 옵션 등 OTT는 이제 극장이 제공하던 경험을 상당 부분 대체하고 있습니다. 관객 입장에서는 시간과 비용을 절약할 수 있고, 콘텐츠 제작사 입장에서는 배급 구조를 간소화할 수 있는 장점이 있어 OTT 중심의 콘텐츠 소비 흐름은 더욱 가속화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환경 속에서 극장들은 구조적인 변화 없이는 생존 자체가 어려워졌고, 결국 롯데시네마와 메가박스는 중복되는 상권 내 지점을 통합하고 인력 운영을 효율화함으로써 비용 절감을 도모하고, 콘텐츠 투자 여력을 확보하기 위해 이번 합병을 추진하게 된 것입니다. 이는 단순한 경영 합리화를 넘어서 산업 전체의 지속 가능성을 위한 전략적 결단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합병의 영향: 시장 재편과 소비자 체감 변화
이번 합병으로 인해 탄생한 롯데-메가박스 통합법인은 약 1,700개의 스크린을 보유하게 되어, 기존 CGV(약 1,600개)를 넘어서는 전국 최대 규모의 극장 체인이 됩니다. 시장 점유율 측면에서는 CGV가 50% 이상, 롯데와 메가박스가 각각 약 20% 안팎의 점유율을 갖고 있었던 것을 감안하면, 합병 후 단일 사업자가 전체 시장의 40% 이상을 차지하게 됩니다. 이로써 기존의 '3강 구도'였던 국내 극장 시장은 '2강 구도'로 재편될 전망입니다.
소비자 입장에서 긍정적인 측면은 다음과 같습니다. 우선 운영 효율화로 인해 더 쾌적한 관람 환경을 기대할 수 있습니다. 고급화된 좌석, 향상된 음향 시스템, 특별관 확대 등 서비스 품질 향상이 가능해지며, 메가박스가 강점을 가진 예술영화 단독 상영, 특별 기획전 등의 콘텐츠 다양성 역시 계승될 것으로 보입니다. 중복 출점이 해소되면 소비자들의 선택 혼란도 줄어들고, 특정 지역의 시설 개선이나 리모델링에도 더 많은 투자가 이뤄질 가능성이 높아집니다.
그러나 우려도 존재합니다. 경쟁이 줄어들면서 요금 인상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실제로 영화 티켓 가격은 팬데믹 이전 평균 8,000원이던 것이 현재는 약 14,000~15,000원 수준으로 상승했습니다. 이는 극장들이 팬데믹 시기 손실을 회복하려는 과정에서 발생한 것이지만, 향후 경쟁이 약화되면 가격을 조정할 유인이 더 커질 수 있습니다. 또한 멤버십 혜택 축소, 포인트 적립률 하향, 매점 가격 인상 등 소비자 서비스의 질이 저하될 우려도 존재합니다.
특히 중소 제작사와 독립영화계의 우려도 커지고 있습니다. 대형 체인은 주로 블록버스터 중심의 상영 편성을 하기 때문에, 작은 영화들이 설 자리를 잃을 수 있습니다. 메가박스가 그간 보여줬던 콘텐츠 다양성 정책이 유지되지 않는다면, 영화 생태계 전반의 다양성이 위협받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습니다.
공정위 심사와 산업 구조 개편의 기로
이번 합병은 공정거래위원회의 기업결합 심사를 반드시 거쳐야 합니다. 공정위는 통상적으로 시장 점유율이 50%를 넘기거나, 특정 지역에서 70% 이상의 점유율을 차지하는 경우 독과점 가능성을 우려하며 조건부 승인을 내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롯데-메가박스 합병 역시 전국 단위에서는 물론, 일부 지역에서는 단일 사업자가 극장 운영을 사실상 독점하는 구조가 될 수 있기 때문에, 공정위의 심사는 매우 까다롭게 진행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실제로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합병 사례처럼, 공정위가 일부 지역 극장 매각, 스크린 수 제한, 상영작 다양성 확보 등의 조건을 붙여 승인하는 시나리오가 유력합니다. 현재 합병 기업의 합산 점유율은 전국 기준 40%대이지만, 일부 지역에서는 70~90%를 넘는 경우도 있을 것으로 분석되고 있어, 지역별 대응 전략이 중요해질 전망입니다.
그러나 영화 산업 전반의 위기를 감안할 때, 정부가 이번 합병을 산업 생존 차원의 구조조정으로 간주할 가능성도 큽니다. 영화 제작과 투자, 배급까지 전반적으로 침체되어 있는 현재 상황에서, 두 기업이 합병을 통해 자본력을 확보하고, 신규 투자나 콘텐츠 확보 경쟁에 나설 수 있다면 장기적으로는 산업 안정화에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시각도 있습니다.
결국 이번 합병은 단순한 규모의 확대를 넘어, 한국 극장 산업이 처한 현실적 위기와 변화하는 미디어 환경 속에서 새로운 생존 전략을 찾기 위한 과도기적 결정이라 할 수 있습니다. OTT와의 경쟁, 소비자 습관의 변화, 콘텐츠 다양성 문제 등 풀어야 할 과제가 많지만, 이러한 변화가 오히려 산업 전반의 혁신을 이끌어내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해 봅니다.